이명복 展 유엠 갤러리
Lee Myoung-Bok Solo Exhibition in UM Gallery, South Korea
2014.11.05 - 11.20
월요일 ~ 금요일 10am - 18pm
토요일 10am - 17pm
오프닝 - 11.05 (수) 17pm -
UM Gallery에서는 제주도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명복 작가의 개인전을 엽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제주에 정착한 이후 그 속에서 보고, 느끼고, 고민하며 일상의 아름다움에서부터 제주의 아픈 역사, 육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강렬한 색상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제주의 일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팽나무 형태에서 인간사의 굴곡을 느끼고,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은 작가 곧 자신을 나타내는 등 이번 전시는 마냥 아름답게만 느끼는 제주의 풍경 속에서 작가의 또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불씨, 162×112㎝, 장지에 아크릴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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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복이 제주에 정착한 것은 2010년이다. 그가 다른 지역을 마다하고 이곳 한반도 최남단에 남은 인생 절반을 심고자 입도(入島)한 것은 어려운 결단이었다. 바람 많고, 물 설은 섬땅 제주에 마치 귀양 온 옛 사람처럼 입지(立志)를 새로 세운 것은 화가의 삶을 마저 누리기 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명복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화인이라는 직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울에서 제주까지 바람의 길을 따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것은 여러모로 일상에 쫓겼던 자신의 삶 때문이었다. 과거 이미 잘 자라고 있었던 감각의 예봉(銳鋒)을 꺾어버린 순간, 이명복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그 트라우마는 잃어버린 아이덴티티를 찾겠다는 심기(心氣)로 다시 일어섰고, 자신의 예술의지를 맘껏 꽃피우지 못했던 자아 결핍은 제주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발길을 이끌었다.
섬, 116x72cm, 장지에 아크릴릭, 2014 |
이명복의 리얼리즘은 외세에 시달리는 민족에 대한 염려로 시작된 듯하다. 역사의 사실들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래서 안다는 것에는 늘 고뇌가 따르고, 급기야 역사의 모순을 바로잡으려고 실천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술로 역사의 모순에 다가서려고 할 때 바로 리얼리즘 정신과 연결된다. 이명복의 리얼리즘은 그의 예술이념으로 취한 사실정신(寫實精神)과 상통한다. 그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땅이야말로 바로 역사의 현장이었고, 결국 땅의 주인은 그곳의 민중이라는 사실을 그는 산하 기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명복의 ‘사실정신’은 땅과 사람, 그리고 그것의 매듭인 역사라는 틀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명복의 미학으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바람부는 밤, 141×91㎝, 장지에 아크릴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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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복의 미학은 곧 현실에서 아름다움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아름다움은 유용성에서 출발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 필요한 것을 유용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기본 사상이다. 인간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실존 자체가 자기의 책임 소관이니 스스로 삶과 죽음이라는 막대한 짐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피곤한 것, 잔뜩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러 상황들은 어떤 선전이나 교육, 이데올로기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름다울 리도 없거니와 인간을 더 험악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때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한 축으로는 인간을 나쁘게 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관계들에 개입하여 그것을 예술적으로 고발하거나 전복하는 것이고, 다른 한 축으로는 그 모순을 넘어 인간 모두에게 유용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리얼리즘은 세계 모순에 대항하여 인간을 포용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매우 널리 소통될 수 있는 창작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제 이명복은 자신의 사실정신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제주라는 섬이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 셈이다. 예술의 길도 인생길과 같이 분명 끝이 있는 법이어서, 그리 서두르지도 주저앉지도 말아야 한다. 조급한 나머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인생 속도에 민감하다. 바쁜 사람에게는 급행열차도 느릴 법이지만, 하물며 인생의 열차가 얼마만큼 빨라야 일에 만족할 수 있을까. 급한 마음은 마음을 급하게만 할 뿐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명복의 제주시대는 기약이 확실하지 않지만 희망이 없지도 않다. 희망을 위해서는 어제의 흩어진 주제들을 마치 나무의 처진 가지를 자르듯 먼저 솎아내야 한다. 항상 버릴 것은 적고 취할 것 또한 많지 않은 것이 예술가가 처한 상황이다. 어떤 것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 환경과 삶의 풍토가 바뀌면 서서히 사람도 바뀐다. 몸이 그 위치가 달라지면 마음도 위치 따라 바뀌는 것처럼 정착한 곳의 풍토에 과감히 몸과 정신을 맡겨야 한다. 몸의 경험적인 인지 능력은 끝에 가서 새 정신으로 다시 배양되기 때문이다.
김유정(미술평론가)